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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메모리쿠스7

고해성사 휴.. 할 말 있어요. 뭔데? 저.. 저.. 그러니깐요..그게.. 제주도 가기로 했어요. 뭐? 아니요..그니깐요..사실은..못갈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요.. 오늘 강의에서 안톤체홉의 얘기를 했는데요. 인생이 그런거래요. 갈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은 못 지르는 거래요. 몇년이 지나도..몇십년이 지나도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그냥 그 자리에 있는거래요. 그래서요..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있잖아요, 선생님이 아직 나는 젊어서 갈 수 있대요. 물론 제주도에 가라고 얘기한건 아니지만요. 마음에 품은걸 옮길 수 있는 나이래요. 그 순간 머리가 핑도는것 같았어요. 내 인생의 1막이 이제 끝나가고 있는거잖아요. 2막이 열리면..더 고민할테고, 그러면 또 힘들테고..그러다 3막이 지나고 막이 내리면..그때 후.. 2010. 7. 15.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 김대중 대통령의 마지막 일기 모음 2009년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 명. 10시간 동안 세배 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2009년 1월 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 2009. 8. 21.
반을 잃고, 또 반 마저 잃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병세 악화소식이 들려옴에 따라 어느 정도 마음에 준비를 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충격적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허무하다. 노무현 대통령을 잃은지 얼마 안되서, 김대중 대통령까지 이렇게 떠나버리니 두 기둥이 뿌리뽑혀져 남겨진 폐허에 선 기분이다. 아부지한테 문자가 왔다. 지방에 내려가 있는 아부지는 아직 그 소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부지가 올 때까지 잘 지내고 있으라고 한다. 아부지를 생각하니까, 또 눈물이 울컥한다. 우리 아부지는 김대중 대통령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97년 대선 당시, 정권이 바뀌면 연금이 안 나올까봐 염려하는 그의 장인을 찾아가 이번에는 좀 김대중을 찍어주십사 설득했던게 우리 아빠였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던.. 2009. 8. 18.
비올것같은날 중얼중얼 #1. 살이 좀 찐것같다. 첫번째, 바지가 잘 안맞고=ㅅ= 두번째, OhmyTV에 내가 어쩌다 찍혔는데 그 영상을 보노라니 얼굴이 장난아니게 후덕하고, 세번째, 걍 몸이 무겁다. 살 빼려는 마음 반, 취미활동하려는 마음 반으로 춤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살들을 보니 정말 실행에 옮겨야될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난 학창시절에 장기자랑을 휩쓸었던 '댄스의 이단아' 가 아니었던가! 조만간 목욕탕에 가서, 힘껏 때를 밀고 몸무게를 재서 내 본연의 육체와 직접 대면해야겠다. 저녁을 굶자!, 라고 굳게 다짐하려했는데 오늘 또 저녁약속이 있..다. 흠흠, 내..내일부터. #2. 이문세 앨범 정말 좋다. 특히 이렇게 비가 내릴것같지만, 또 흐리기만 하고 말것같은날에는 더할나위 없이 어울린다. 특히 .. 2009. 8. 3.
내가 기억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 MBC 스페셜 '노무현이라는 사람' 을 보고나니, 오랜만에 다시금 그리움이 흘러 넘치고 눈물이 또 다시 차오른다. 내가 처음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것은, 2002년 대선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주변으로 유세를 온 다는 소식을 들었을때였다. 당시 나는 '노하우' 등의 노무현 팬페이지를 통해 스스럼없이 그를 '노짱' 이라고 불렀던 노사모중에 하나였기에, 그 소식을 듣고는 야자를 빼먹고 달려갔다. 노란풍선으로 둘러싸인 틈에서 그는 연설을 했고, 난 잘 알지도 못하는 연설 내용을 들으면서 그의 진심을 느꼈다. 연설이 끝난 후, 그는 지지자들에게 둘러쌓여 악수를 해 주고 있었다. 아마도 빠듯한 유세 스케쥴을 다 소화하기가 힘든 때였을거다. 여튼 그렇게 그가 악수를 끝내고, 차에 올라타려는데 나도 문득 그의 손.. 2009. 7. 11.
188인의 작가 한 줄 선언문. 인권이 존중되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땅에서, 우리는 살아야 한다.┃강경희 이곳은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아니다. 우리는 장님이 아니다. 우리는 보고 느끼고 표현할 것이다┃강성은 각자 흘린 눈물이 같은 맛을 낼 때, 분노는 만인의 양식!┃강정 살아 있었구나, 너희 6월의 불씨들이여!┃강진 반성이 멈추는 순간 우리의 말은 오물이 되고, 민주주의가 멈추는 순간 우리의 삶은 허깨비가 된다.┃고나리 활짝 핀 민주주의 꽃내음에 흠뻑 취하고 싶어라!┃고명철 이제 우리에게 금지된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봉준 _ 금지를 금지하라! 국민을 잠재적 폭도로 여기는 정권은 민주주의의 적입니다.┃고인환 우리에겐 마감의 힘이 있다. 너희의 마감을 보고야 말겠다.┃고찬규 촌스러워서 살 수가 없다.┃곽은영 _ 진짜 촌스럽다.. 지금이.. 2009. 6. 11.
이토록 가슴아픈, 한 장의 사진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결국 DJ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나보다. DJ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고마운 사람이고, 미안한 사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DJ 아들들의 비리로 선거에서 쓴맛을 봐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표현으로라면 '죽기보다 싫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DJ의 편에 섰다. DJ는 민주화의 마지막 보루였기 때문이다. 개인적 감정보다 대의를 앞세우는 사람이 노무현이었고, 그는 그를 발굴하고 밀어줄 수 있었던 영남의 힘을 가진 김영삼의 곁을 떠나 정치적 열세에 있던 DJ의 옆으로 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DJ가 대통령이던 시절에 그를 만나 대통령에 대한 꿈을 얘기한적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라며 자조섞인 말투로 미래의 꿈을 얘기했던 그에게 DJ가 던진.. 2009.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