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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가을밤을 즐기지 않는 자, 유죄.

by 김핸디 2009. 10. 5.



 저녁식사를 맛나게하고, 운동 나갈 준비를 한다. 동생에게 같이가자고 졸라보지만, TV 보는 주제에 싫다고 튕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수식어에 '년' 을 붙여 실컷 동생을 욕해주고 나온다. 혼자 나가기에는 영 섭섭하여 CDP를 챙긴다. 간택된 CD는 영화 '후아유'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1번 트랙을 들으며 운동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운동장에 나가니, 이미 여러 사람들이 나와 열심히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나도 재빨리 합류하여 운동장을 돌기 시작한다. 불독맨션의 '사과' 가 귓가에 흘러나오자, 동생 대신 CDP를 데려온게 천만번 잘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치켜세운다. 푸르름한 저녁 하늘과, 운동장 곳곳의 가로등이 운치있게 빛나노라니 그저 운동을 할 뿐이지만 거대한 영화 세트장에 와 있는 기분이든다.

 나만을 위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흘러나오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오는 땀방울은 솔솔 불어오는 저녁 바람이 기분좋게 식혀준다. 초딩무리가 저 산 위로 붉게 타오르는 해 같은 보름달을 보고 '산불이다~' 라며 경망스럽게 저 멀리서 뛰어온다. 바보들 -ㅅ- 나는 초딩들에게 제법 시니컬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다시 운동장을 돈다. 마치 내게는 저런 시절이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나의 초딩시절은 저들보다 훨씬 더.. 흠흠. 

 어느새 조승우의 라이브가 흘러 나온다. 난 너를 원해! 냉면보다더! 조승우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난 니가 꽃등심보다 더 좋아, 라는 말로 고백을 해 봐야지, 하고 생각해본다. 7 바퀴째를 넘어가자 다리가 후들거린다. 조금만 더, 라는 오기를 부려 10 바퀴를 채운다. 가을밤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나는 10월의 가을밤에 투자하리라 다짐한다. 가을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