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서거.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병세 악화소식이 들려옴에 따라 어느 정도 마음에 준비를 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충격적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허무하다. 노무현 대통령을 잃은지 얼마 안되서, 김대중 대통령까지 이렇게 떠나버리니 두 기둥이 뿌리뽑혀져 남겨진 폐허에 선 기분이다.
아부지한테 문자가 왔다. 지방에 내려가 있는 아부지는 아직 그 소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부지가 올 때까지 잘 지내고 있으라고 한다. 아부지를 생각하니까, 또 눈물이 울컥한다. 우리 아부지는 김대중 대통령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97년 대선 당시, 정권이 바뀌면 연금이 안 나올까봐 염려하는 그의 장인을 찾아가 이번에는 좀 김대중을 찍어주십사 설득했던게 우리 아빠였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던 97년의 어느 겨울 밤, 크게 기뻐하던 엄마와 아빠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그때, 엄마 아빠의 기쁜 표정을 보며, 막연히 '김대중 대통령은 좋은 사람인가부다' 라고 생각했었다.
일요일에 도서관에 들려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을 대여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시기전에 하나라도 더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거였다. 같이 빌려왔던 조선왕조실록과 검은집을 다 읽고, 오늘부터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인 <동행>을 읽어내릴 참이었는데.. 그랬는데..
생전에 김대중 대통령을 두 번 가까이서 뵈었다. 연설도 두번이나 들었다. 그때마다 노쇠하신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이유도 없이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영원히 계셔줄것이라고 믿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니까, 겨울을 이겨 내고 피어난 인동초같은 사람이니까.
삶이 갑자기 그냥 텅 빈 느낌이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는데, 그 분의 부재가 그렇게 너무도 크다. 나는 이제 무엇을 잡고 서 있어야 하나. 반을 잃고, 반 마저 잃은 지금. 나는 그저 무너지는 것 밖에는 할 도리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없는 대한민국.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 불쌍한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