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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메모리쿠스

내가 기억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

by 김핸디 2009. 7. 11.
 
 MBC 스페셜 '노무현이라는 사람' 을 보고나니, 오랜만에 다시금 그리움이 흘러 넘치고 눈물이 또 다시 차오른다. 


 내가 처음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것은, 2002년 대선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주변으로 유세를 온 다는 소식을 들었을때였다. 당시 나는 '노하우' 등의 노무현 팬페이지를 통해 스스럼없이 그를 '노짱' 이라고 불렀던 노사모중에 하나였기에, 그 소식을 듣고는 야자를 빼먹고 달려갔다. 노란풍선으로 둘러싸인 틈에서 그는 연설을 했고, 난 잘 알지도 못하는 연설 내용을 들으면서 그의 진심을 느꼈다. 연설이 끝난 후, 그는 지지자들에게 둘러쌓여 악수를 해 주고 있었다. 아마도 빠듯한 유세 스케쥴을 다 소화하기가 힘든 때였을거다. 여튼 그렇게 그가 악수를 끝내고, 차에 올라타려는데 나도 문득 그의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노짱~' 이라고 부르며 애절하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거기에는 나말고도 그의 손을 한 번이라도 잡으려는 사람들로 그득했었으니까. 그런데, 그는 차에 타려다가 멈칫 돌아서서 내 손을 마지막으로 잡아주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학교로 돌아와 하루종일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었다. 유권자도 아닌 내 손을 잡아준 그가 너무도 고마웠다.

 그리고 며칠 뒤 내가 사는 시의 다른 지역으로 그가 유세를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유세연설은 지난번처럼 저녁이 아니라 오후에 예정되어 있었다. 학교를 다닌 학생의 신분인 나로서는 참석이 불가능했지만, 다행히도 그날은 단축수업이 있었고 나는 유세를 끝내고 돌아가는 그의 모습을 겨우 만나볼 수 있었다. 연설을 끝나고 내려오는 그를 보면서, '대통령 꼭 되세요!' 라고 외쳤다. 그리고 악수를 차마 청하지 못하고 쭈뼛거리고 있는데 그가 다가와 또 악수를 해주었다. 그토록 존경하는 사람과의 두번째 악수. 너무 좋아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노하우' 에 글을 올렸고, 내 글은 베스트뷰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당시, 베스트뷰에 오른게 무척이나 자랑스러워서 해두었던 캡쳐.


 대통령 선거 전 날, 정몽준이 지지를 철회했다. 이길것만 같았는데, 그의 지지철회소식에 하늘이 무너지는것만 같았다. 밤을 새면서 인터넷의 글을 읽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유권자가 아니었던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어른들에게 문자를 보내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16대 대통령 선거 날. MBC의 출구조사에서 노짱이 당선유력시 되었고, 나는 펑펑 울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광화문에 가기 위해서 뛰쳐나갔다가, 아빠에게 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당선되었으니까, 굳이 광화문에 가서 노란풍선을 흔들지 않아도 좋았다.

 그의 취임식에 국민들을 초청한다고 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청글을 남기고, 간절한 마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에 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얼마 후 택배로 '16대 대통령 노무현 취임식'의 입장카드가 날아왔다. 나는, 정말로, 초대받은것이었다. 취임식 전날, 미용실을 찾아서 나름대로 머리도 자르고 봄에 입으려고 미리 사놓았던 새옷까지 입었다. 취임식은 억수로 추웠다. 야외였고, 나는 온몸을 달달달 떨었다. 그래도 그저 그 자리에 있는게 행복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그 순간을 함께했던 것이다. 그 감격에 비하면 추위쯤이야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게 주어졌던, 제 16 대 대통령 취임식 입장카드.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그를 믿었다. 미니홈피에 끊임없이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과 그의 발언들을 모아 올렸다. 친구들은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냐고 물었고, 검색을 통해 내 미니홈피를 찾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내가 올린 사진을 퍼가기도 하면서, 동조해주었다.

 탄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비상식적인 국회의 행태에 국민들은 분노했고, 나 역시 친구 2 명과 광화문을 찾아서 제 목소리를 냈다. '우리가 뽑은 태통령이다. 그를 세울 권리도 끌어낼 권리도 너희가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플랜카드를 들었다.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촛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나는 그렇게 촛불 하나를 밝혔다. 탄핵 소추안은 헌재에 의해 기각되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다시' 우리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한 동안 그를 잊었다. 여전히 '비판적 지지자' 로 남아있긴 했었지만, 탄핵결정을 국민의 힘으로 철회시키고 이제는 할만큼 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열린우리당까지 절대의석을 차지한 판국에, 더 이상 나 마저 작은 힘을 더 보탤필요는 없을것 같다고 느꼈다.

 갈수록 그의 행보에 의문이 들었다. 서운함과 배신감이 가끔씩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공터동영상만 떠올리면 밉기보다는 애틋했고,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임에도 가끔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언제나 떠올리면, 보잘것없는 나 마저도 방패가 되어주고싶은 사람. 나의 영웅이면서도 의지하기 보다는, 지켜주고 싶은 사람.

 그런 그가 먼저 떠났다. 가는 길 차마 잡지못하고 놓쳐버린게 한이 되어 눈물이 난다. 운다고 울었는데, 끊이지않고 눈물이 난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언제나 그를 생각하면 눈물이 차올랐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게 고마워서 울고, 그가 바보라고 불릴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답답해서 울고, 그가 사람들에게 치이는게 안타까워 울고, 그를 미워했던 내 자신이 후회스러워서 운다. 

 노무현이라는 사람. 나를 참 기쁘게도, 슬프게도 했던 사람. 절망밖에 안 보이던 정치권에 희망의 씨앗을 심은 사람. 솔직했고, 소탈했으며, 노력할 줄 알았던 사람. 어린아이에게도 머리를 숙일 줄 알고, 국민에게만 빚졌던 사람.
약자에게는 약했고, 강자에게는 강했던 사람. 서서 죽을지언정 무릎꿇지 않았던 사람. 노무현이라는 사람. 그 사람, 그랬던 사람.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 있던 날, 나는 노제에 참여하면서 그가 나의 손을 잡아주던 때를 떠올렸다. 그 따뜻한 미소와, 고등학생인 나에게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던 겸손함과, 나의 응원에 고마워하던 그 모습. 그리고, 내 손을 잡아주고 돌아섰던 그 뒷모습... 그 때 한 번 더 불러볼걸 그랬다. 이렇게 그리울줄 알았더라면, 그 때 한 번 더 불러볼걸. 정말이지... 그럴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