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권만 덜컥 사놓고 뒷짐지고 있다가, 갑자기 '숙박을 예약안했구나' 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며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아, 바야흐로 또 숙박전쟁의 시작인것이다. 유럽여행을 갔을때는 정말 무슨 배짱인지, 도착국가인 영국에서의 숙박만 예약하고 갔었다. 명분이야 그럴듯하게 '여행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것' 이라는 이유에서 였지만, 그렇게 예약을 안하고 다닌탓에 파리에 도착해서는 새벽부터 세느강을 보며 덜덜 떨어야만했고, 꼴마르에 도착해서는 정말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동네를 몇바퀴나 돌아야만 했다.
결국 여행 마지막날은 우리가 그렇게도 칭찬해 마지않던 저가 호텔 Etap에서 묵으며, 아예 관광을 포기하고 지겨울때까지 샤워를 하고(아, 호텔에서 묵는다는건 샤워할수있는 자유를 의미하리라T_T) 빈둥거리면서 호텔 주변을 벗어나지 않기까지 했다. 한달간 민박과 호스텔을 전전하던 우리에게, Etap호텔이 선사하는 그 기쁨과 환희는 유럽에서의 하루를 온전히 호텔에 바칠만큼 큰 것이었다. 아, 민박과 호스텔. 모르는 사람과 씻을 시간을 다퉈야하고, 친구와 맘놓고 이야기 할 수도 없는 그 곳-_ㅜ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이번에도 민박과 호스텔을 기웃거린다. 이유는 물론, 가격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내 자신의 몸뚱아리를 소중히 여기는 부류에 속한다 한들, 어떻게 무일푼 대학생 주제에 1인실을 쓸 수 있겠느냔 말이다. 아아, 하지만 벌써부터 도미토리를 쓸 생각을 하니 피곤함이 밀려온다. 조용히 내 침대로 기어들어가 일기를 끄적이고, 남들한테 방해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가끔은 온몸자체가 거대한 smell 그 자체인(주로 외국인-_ㅜ) 사람과도 한 방에서 지내야만 하는 그 모든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준비한다. 여행은 그 모든 불편함을 상쇄할만큼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는걸 아니까. 아니, 오히려 불편함과 낯설음을 발견하러 떠나는것이 여행인것이다. 좋았든 나빴든 기억할거리가 많아진다는것은 즐거운 일이다. 누가 그러는데, 인생은 '젊었을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나이들면 그 추억을 곱씹으며 사는것이다' 라고 하더라. 나는 지금 곱씹을 거리를 만드는 중이다. 어떤 맛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때가 되면 추억속에서 심심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