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
고상한 실패들
by 김핸디
2009. 11. 7.
하나의 고상한 실패가 수많은 저속한
성공보다 훨씬 낫다.
- 조지 버나드 쇼
실패가 두렵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한건, '실패해도 남는 것 있다' 라는 것을 깨달은 뒤였다. 실패 후,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때가 있었다. 하지만, 실패후의 시작은 결코 그 전의 시작과는 같지 않다는것을 깨달았다. 나는 세상의 기준점에 달하지는 못했지만, 아무것도 없던 나의 상태를 실패한만큼 이미 채우고 있었던것이다.
그래도 인간인지라, 언제나 실패보다는 성공을 갈구한다. 그러나, 성공후에 평온한 나날이 지속될즈음이면, 이내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일때가 있다. 치열하지 않기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것같다는 불안감. 현재에 머무르며 도약의 기회를 잃게 될 것 같다는 두려움. 그럴때의 그 성공은 오히려 나를 잠식하는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리틀 미스 선샤인>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마르셀 푸르스트를 알아? 그래. 프랑스 작가야. 완벽한 패배자지.
진짜 직업을 가져본 적도 없고,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만 했어. 동성애자였거든.
게다가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20년에 걸쳐 썼지. 하지만, 그는 아마도 셰익스피어 이후의 최고의 작가일걸.
어쨌든.. 그가 말년의 삶을 되돌아보며 말하길, 힘겨웠던 시절들이 삶에서 가장 좋은 시기라고 했대.
그것들이 자신을 만들었으니까. 반면, 행복했던 시절에는 아무것도 배운게 없었대. 완전히 허송세월이었지.
쇠를 달구는 시간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시간들이다. 고통스럽고 힘겨울수록, 그것은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실패는 쓰지만, 몸에는 달다. 실패는 괜찮다. 언제나 경계해야 할 것은 실패보다 무서운 저속한 성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