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모 쿵푸스

공부가 존재를 구원하리라, 고미숙 <임꺽정..> 강연후기

by 김핸디 2009. 7. 25.



 지난, 수요일. 알라딘에서 하는 고미숙의 <임꺽정, 길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강연회에 다녀왔다.

 책에서 보여주던 글빨처럼, 그녀의 말빨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아무렇게 않게 던지는 일련의 발언들이 폭소를 자아내서 1시간여가 정말로 유쾌했던 강연이었다.

 그녀가 천착한 '임꺽정과 그의 친구들' 은 한 마디로 노는 남자들이다. 직업에 의지가 없는 이들, 그래서 어마어마한 사회적 편견에 휩싸인 이들. 그러나,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긍정할 줄 아는 사람들.

 천한 신분과 마땅한 직업도 없는 그들이 그렇게 스스로를 당당하게 여길 수 있었던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임꺽정과 그의 친구들이 내버려지고 가진것 없는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배우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부는 현대인의 공부처럼 '합격' 을 내세우는 대가의 공부가 아니라, 그저 공부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치열한 훈련의 과정이고 그 공부를 통해 그들은 존재로서 의미를 얻는다.

 공부를 통해서 자기운명을 긍정하게 되고, 그 긍정은 그들의 존재를 구원한게 되는 것이다. 하늘아래 어디에도 머리숙이지 않는 당당함. 그게 공부가 그들의 존재를 구원한 결과다.

 
 고미숙은 일전에 문사철특강을 통해서 '배움이란 삶의 적용되는 모든것' 이라고 했다. 그리고, 경제 경영등의 소위 주가가 높은 학문의 예측이 다 틀렸는데(혹은 틀릴것인데) 왜 계속 그런 실용학문을 배우려 드는가라는 의문이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부를 하면 아는게 많아지므로 삶이 더 자유로져야 정상이다. 아는게 많으니 누리는게 많아야 정상인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공부해오던 것들은 현대인을 자유롭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속박하기만 했다.

 왜 인가. 산업화시대 이후의 공부들은 인간존재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공부들은 세부적인 기술이나 방법론에 불과하다. 인간존재, 총체적인 개념을 제시하는 공부는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는 '고전읽기' 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현재의 삶(결코 행복하다고만은 볼 수 없는)을 성찰하고 대안을 보기위해서 우리는 고전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의 공부로는 결코 현재의 삶을 통찰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원 안에 있는 사람이 원을 제대로 볼 수 없는것과도 같다.

 고전읽기는 삶의 이유와 목적을 찾게끔 해주는 가치있는 공부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서 '이렇게 사는것이 옳은가' 라거나 '어떻게 살아야하나' 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 다른 삶을 찾게 된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에 다가가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고리타분한 고전을 왜 파고있어야 되는지 의심하지 말라. 진부하지만, 책 속에 길이 있다.

 공부를 통해서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많이 가지거나 사회적 평판에 의식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공부는 아는만큼 누리고, 아는만큼 자유로워지는 '진짜 공부' 다. 그러니, 삶이 퍽퍽한 자들이여. 고전을 읽을지어다. 책이 당신을, 앎이 존재를 구원하리라.

 

덧. 아래는 친구 김감독과 함께 존재를 구원하기 위해 계획하는 인문학 강좌들.
 


김감독 어때? 난 솔까 진중권이 제일 끌려.(순전히 다루는 학자가 많아서)
일단 고미숙본좌의 <임꺽정..> 부터 읽어야될 것 같긴 한데=_=

복학할 돈으로 여기 자유수강권이나 샀으면 좋겠다-_ㅜ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