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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홍성사 |
네가 아무리 애를 써도 환자의 영혼에는 어느 정도의 악의와 함께 어느 정도의 선의가 있게 마련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만나는 이웃들에게 악의를 품게 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지의 사람들에게는 선의를 갖게 하는 것이지. 그러면 악의는 완전히 실제적인 게 되고, 선의는 주로 상상의 차원에서 머무르게 되거든. (p 45)
네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자가 현세의 일들을 원수에게 순종할 기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목적으로 만들고 믿음을 수단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환자를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p 51)
환자에게 만사에 중용을 지키라고 말해 주거라. '종교는 지나치지 않아야 좋은 것' 이라고 믿게만 해 놓으면, 그의 영혼에 대해서는 마음 푹 놓아도 좋아. 중용을 지키는 종교란 우리한테 무교나 마찬가지니까. 아니, 무교보다 훨씬 더 즐겁지. (p 60)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취향과 충동은 원수가 준 원재료이자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그런 취향과 충동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로선 먼저 한 점을 따고 들어가는 셈이다. .... 누가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고 아무 사심 없이 좋아하는 대상을 하나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우리의 가장 정교한 공격방식에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사람이든 음식이든 환자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은 버리게 하고, 그 대신 '제일 좋은' 사람, '적합한' 음식, '중요한' 책들만 찾게 만드는 일에 늘 힘쓰거라.
(p 80)
여하튼 행동으로 옮기는 것만 아니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게 두거라. 상상과 감정이 아무리 경건해도 의지와 연결되지 않는 한 해로울 게 없다. 어떤 인간이 말했듯이, 적극적인 습관은 반복할수록 강화되지만 수동적 습관은 반복할수록 약화되는 법이거든. 느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행동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결국에는 느낄 수도 없게 되지. (p 81)
원수가 원하는 건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회를 설계한 후, 그것이 가장 좋은 교회라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는거야. 다른 사람이 설계했을 때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기쁨으로 말이지. 원수는 결국 인간이 자신에게 유리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이웃이 가진 재능을 볼 때와 똑같이, 해 뜨는 광경이나 코끼리나 폭포수를 볼 때와 똑같이, 자신의 재능 또한 솔직하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뻐할 수 있길 바라는 거다. (p 84)
우리가 바라는 바, 정말 간절히 바라는 바는 인간들이 기독교를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출세 수단으로 이용한다면야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라도 - 하다못해 사회 정의를 위한 수단으로라도 - 삼게 해야지. 이 경우, '사회 정의는 원수가 요구하는 것이므로 가치 있는 일' 이라고 일단 믿게 한 후, '기독교는 그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므로 가치 있다' 고 믿는 단계까지 밀어붙여야 한다.